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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일기 / 2026. 5. 25. 02:49

무엇이 되고 싶어 하루하루가 힘들다. 뭐가 되기보다 내 능력치를 알고 오늘 할 일을 하는 것, 그런 오늘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 그게 중요하다는 걸 나보다 10년은 더 멋지게 살아온 언니들이 말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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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와 이번 겨울 방학(2026년 1월)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긴 토론을 했다. 아이는 한국 말고 다른 나라에서 머물고 싶다 했고, 나는 무작정 쉬고 싶다고 했다. 우리 둘이 이야기 하는데 신랑이 갑자기 "발리 어때?" 하는 거다. 발리... 어디에 있는 나라야? 나라가 맞나? 찾아보니 인도네시아에 속한 섬이었다. 비싼 돈 주고 몰디브 간다는 동생한테도 발리 가지 왠 몰디브? 이랬는데 발리가 나라이름이 아니라 지역이름인지도 몰랐다. 무계획 대장인 나와 신랑은 그날로 바로 발리행 티켓을 끊었다. 지금 발리는 장마철이라 사람들이 딱 선호하지 않는 여행지 중 하나란 사실도 모른채 좋다고 설레여했다. 대충 수영복과 스노클링 장비만 잘 챙겨서 짐을 쌓다. 근데 발리 어디에서 놀지? 발리도 생각보다 컸다. 
 
신랑과 아이는 무조건 물놀이만 하면 된다. 그리고 나는 쾌적하게 푹 쉬면 된다. 우리 갓난아기 둘째는 밥만 있으면 된다. 그렇다면 비교적 알려지지 않고 한산한 곳으로 가야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의 목적지는 동쪽 바닷가 마을 아메드. 아메드에서 일주일을 머물기로 했다.
 
아메드에서 보낸 첫 날은 말도 못하게 따뜻하고 청명했다. 우기라고 했는데 비는 잠깐 오고 말고 너무 추운 한국에서 온 우리를 덥혔다. 아... 온도와 습도만으로도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짐을 풀고 숙소에 있는 식당에서 나시고랭과 치킨 샐러드로 배를 채우고 푹 쉬었다. 당진에서 인천, 인천에서 발리 공항 7시간, 공항 근처인 꾸따에서 하룻밤 자고, 꾸따에서 아메드 4시간을 이동하여 오느라 사실 뭘 할 수 있는 체력이 아니었다. 그저 이곳에 와 있다는 사실만으로 좋았다. 
 
사실 우리 부부는 둘 다 변변한 직업도 작장도 없다. 그래도 큰 아이가 방학이 되면 여행을 한다. 나는 우리가 시간이 이렇게 넉넉한 사람들인데 돈 좀 못 번다고 여행을 안 가는 게 마땅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더하여 어느 날 시아버지가 말했다. "젊을 때 여행해라. 빚을 내서라도 여행을 해야한다." 여행을 가고야 말겠다는 나의 결심을 정당화하게 해주는 어른의 말이 어찌나 고미운지 모른다. 여행은 우리 가족을 새로운 풍경 새로운 시간으로 이끈다. 그것은 본래 우리가 가지고 있던 작은 세계에서 큰 세계로의 확장을 의미한다. 사업이 잘 안 되고 주식이 안 오른다고 좌절하고 있는 틈을 벌려주는 강력한 수단이 여행이다. 최소한 창의적인 일을 지속하고픈 우리 부부와 이젠 자기 생각을 글로 그림으로 표현할 줄 아는 큰 아이에게는 말이다.  
 
아메드에서 만난 바다, 사람, 음식, 종교, 일몰 뭐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게 없었다. 매일 새벽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는 발리 사람들을 닮아있는 이곳에서 머문 이야기를 짧게 써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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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친구를 기다리며
 
친구는 나와 10년을 연락을 끊고 산다. 어떻게 그러지. 속으로 분해했다. 그러다 내가 아이의 엄마로 10년 살면서 친구가 이해됐다. 친구는 아주 어릴 적부터 엄마 없이 술 마시는 아빠와 살았다. 내게는 누구보다도 반짝반짝 빛났던 친구는 가슴 속 깊은 곳에 슬픔을 묻어놓고 살았다. 나는 그 사실만으로도 친구가 세상과 단절할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세상이 저주스럽고 한탄스러울 걸 이제야 알았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친구를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는 것도 슬프지만 인정한다.

 
우리는 폐허 직전의 동네 골목을 누비면서 뾰족한 곳 하나 없는 아이처럼 티 없이 맑고 명랑하게 놀았다. 날마다 우리 영혼을 채워주는 500원어치 시장 떡볶이를 국물까지 싹싹 긁어 먹어 치우고, 100원짜리 쭈쭈바 하나 사서 반으로 나눠 쪽쪽 빨았고, 좁은 골목길로 새어 나온 살구나무의 살구를 몰래 따서 먹었다. 같이 짝사랑했던 관석이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서로를 밀어주겠다며 깔깔거리며 웃었더랬다. 결국 다른 여자애가 관석이를 차지하면서 우리의 첫사랑이 허무하게 끝났지만. 자라난 환경과 반비례하여 우리는 꽤나 모범생으로 자랐다. 그건 아마도 튼튼하지 않은 부모의 그늘이 아니라 서로에게 기대어 살 줄 알았던 원래부터 타고난 우리 내면의 명랑함 때문이지 않았을까. 최소한 나에게는 친구와 뛰어놀았던 흙먼지 날리는 오래된 달동네가 나를 지켜주는 숲이고 나무였다.
 
이수연 그림책 <비가 내리고 풀은 자란다>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우울과 싱그러움을 동시에 담았다. 그림책 화자인 ‘나’는 비오는 게 반갑지 않다. 새 옷이 흙탕물에 튈까봐 걱정된다. 그런데 같이 빗속을 뚫고 재미난 곳에 가자는 ‘친구’가 나타났다. 둘은 버려진 맥주 공장에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속 깊은 대화를 나눈다. “다행인 건 이제 내가 알고 너도 안다는 거야. 나에게는 사람들이 하는 말들보다 그게 훨씬 더 중요해.” 빗물로 엉망이 되어버린 얼굴과 옷가지는 이제 신경 쓰이지 않는다. 둘은 어느새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된다. "쏟아지는 비를 막을 수" 없지만 아이들 마음대로 친구를 사귀고 신나할 수는 있다. ‘나’에게 절망을 가져다 준 비는 친구 덕분에 따뜻하게 기댈 수 있는 존재로 변한다. 비 덕분에 꽃향기는 더 진해지고 세상의 다채로운 색을 볼 수 있다.
 
나는 우리도 그랬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나는 친구와 보낸 시간들로 그간의 얼룩진 슬픔을 야금야금 지우고 산다. 그녀와 함께 있었던 그곳에서 그 시간에 나는 누구보다 활짝 웃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고도를 기다리듯, 오늘도 나는 친구를 기다린다.
“너에게서 사람들과 잘 지내는 법을 배웠고 어떤 슬픔은 누군가 깊게 이해해 줘서 극복할 수 있는 것이란 걸 알았어. 나는 나만 그랬던 게 아니었기를 간절히 바라. 네가 나에게 오는 그날 나는 널 힘차게 끌어안을 거라고 너를 무지 많이 그리워했다고 고백할 거야. 내가 널 기다리다 지쳐 나자빠지기 전에 그날이 왔으면 좋겠어.”/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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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섯살때 일이다. 80년대였다. 내가 엄마 손을 놓쳤는지 엄마가 내 손을 놓쳤는지 모른다. 엄마를 잃은 나는 바로 경찰서로 보내졌고 반나절이 안 되서 홀트(아동복지회)로 보내졌다. 그리고 극적으로 엄마는 나를 찾았다. 엄마는 그날을 회상하며 내가 입양을 갈 수도 있었다며.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입양 갔으면 좋았을까' 상상했더랬다.

어느날 우연히 다큐 [k넘버]를 티비에서 본 적이 있다. 너무 늦은 시간이고 입양된 사람들이 엄마 찾는 이야기깄거니 하며 티비를 꺼버렸다. 반년이 흐르고 k넘버를 다시 접했다. 이번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봐야지 하면서 시간을 내었다. 내가 엄마를 잃어버렸던  그 시절 해외 입양은 입양이 아니라 "아동수출" 이었다. 그 아이들 대부분은 제대로 된 입양 절차없이 남의 나라에 보내졌다. 아이들이 어떤 대접을 받으며 살았을지 안 봐도 가슴이 먹먹하다. 성인이 되어 자신이 자란 나라의 시민권이 없는 완전한 이방인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찾은 엄마의 나라. 한국. 엄마를 찾아가는 과정은 의문 투성이다. 기관들은 제대로 서류를 내놓지 않는다. 본인이 본인 엄마 찾겠다는데 왜 서류를 자기네 맘대로 조작하고 지우는지. 그리고 마침내 서류에서 찾은 단서 하나. 아이가 발견 된 곳 "경찰서". 나는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 나와 만난다. 공포, 절망감, 상실감이 내 것이였을 수 있었겠다.

엄마는 울고 불고 잃어버린 아이('나')를 찾아 발이 불타 없어질 정도로 뛰고 또 뛰었을 거다. 우리 엄마가 운 좋게 나를 찾았지만 다른 엄마들도 애타게 아이를 찾았을 거다. 그렇게 길 잃은 아이들이 비싼 값에 남의 나라에 넘겨졌다. 꽃다운 소녀들을 "일본군 위안부"로 넘겨버린 것과 똑같은 시스템이란 걸 어렵지 않게 이해했다. 어떻게 나라가 어떻게 소녀를 아이를 보호하진 못할망정.

그리고 오늘 이란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고, 전쟁으로 어린 아이들이 얼마나 죽었나 모른다. 잔인한 세상은 도돌이표./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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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영장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관객석에 앉아있는 걸 즐긴다. 선명한 파란색과 수영하는 사람들. 내 몸은 따뜻하고 촉촉한 공간을 마음껏 느낀다. 그리고 상상한다. 내살과 네살이 닿는 뜨거움을. 야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살갗이 닿는 끈적이고 습한 촉감이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만 쉬어도 된다면. 아무것에도 얽메이지 않는 자연의 몸이 된다면.  온전히 쉴 수 있는 시간, 완전히 너와 한몸이 되는 끈적한 순간. 베토벤의 비창을 들으며 나의 슬픔을 너의 품에 던진다. ...

나는 지금 너와 함께 있는 장면을 현실이 아닌 다른 차원의 시공간으로 그린다. 소설 쓴다는 핑계를 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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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이슬이 반짝이는 거 봤어?”

<염소 시즈카의 숙연한 하루>를 읽고

로자

 

스물 아홉, 내 꿈은 탈서울이었다. 서울은 멋진 사람들이 많고 훌룡한 대안 공간이 모여 있다. 덕분에 친구를 많이 사귀었고 잘 배웠다. 그럼 뭐하나. 해도 해도 너무 많은 자동차들, 밤까지 불 켜진 커다란 빌딩, 골목 곳곳 넘쳐나는 쓰레기. 서울을 위해 많은 지방(매연을 내뿜은 공장과 핵발전소는 주로 지방에 있다)들이 희생하고 있다는 죄책감까지. 나는 더 이상 서울에서 버티기 힘들었다. 나와 신랑은 새로운 정보와 유행이 아닌 더 진실하게 자기를 들여다 볼 시간과 환경이 필요했다.

 

프로젝트를 맡아 장기간 시골에 머문 적도 있고, 시골서 자급자족하는 친구들 집에서 몇 날 며칠을 머물며 산 적도 있다. 그때엔 나같이 나약해 빠진 서울 사람이 거친 야생의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남으리 걱정 가득이었다. 튼튼한 체력도 단단한 정신력도 없었던 시절, 나는 겁을 잔뜩 먹었다. 돈 없이 어떻게 살아. 신랑이 박봉의 협동조합 사무국장 일을 그만 두던 날 바로 제안이 들어왔다. 듣도 보도 여행 한 번 안 와본 당진에서 일자리가 생겼다고. 먹고 살 걱정 안 해도 되는 꽤 괜찮은 자리였다. 돈 걱정 없어지니 가벼운 마음으로 서울을 탈출했다. 돌고 돌아 드디어 꿈을 이뤘다.

 

서울 생활 못지않은 쓰레기 배출에 흙을 밟지 않는 일상. 아직 반쪽짜리 도시탈출이지만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논밭이 펼쳐진 시골에 가고 아이를 시골 유치원에 보낸다. 여기저기 뚜벅이로 다니느라 내 몸은 자주 자연에 맞닿아 있다. 바람 소리 새소리 물소리 벼들끼리 부딪히며 내는 사각사각 소리를 잘 듣는다. 논두렁을 걷다가 팔짝 튀어 오르는 메뚜기를 보며 깜짝 놀라고 꽃잎에 내려앉은 화려한 무늬 나비들을 보며 눈에 생명의 아름다움을 담아간다.

 

시골이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에서 아이 울음도 어린이가 뛰노는 소리도 듣기 어렵다. 길가에 처참하게 찢기고 망가진 채 죽어있는 동물을 본다. 한 달에 두 건 정도 시청에 동물 사체를 접수한다. 주로는 자동차에 치여 죽은 아이들이고 가끔 집에서 키우다 병들어 버려진 아이들도 있다. 태어나서 아름다움 뽐내며 살았을 사슴, 고라니, , 고양이들이 흙바닥에 아스팔트 바닥에 누워있다.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눈물이 또르륵. 나는 이렇게 자주 (살아있든 죽어있든) 동물과 곤충을 보는 것을 귀한 경험이라 여긴다.

 

매미가 나무에서 뚝 떨어져 맴맴거리던 소리 안 들리고, 먹잇감 포착한 개미들은 매미를 들고 줄 맞춰 행진한다. 그와중에 시즈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름답게 반짝이는 아침 이슬을 발견한다. 아침 댓바람부터 단순한 죽음과 찬란한 생을 동시에 경험한 시즈카는 가슴 벅찬 숙연함을 경험했을까. 시즈카는 친구들에게 묻는다. “아침 이슬이 반짝이는 거 봤어?” “매미가 죽으면 노래하지 않는 거야?” 먹고 살기 바쁜 친구들은 시즈카의 물음을 고민할 새 없다. 시즈카 조차도 먹어야 살기에 여린 꽃잎 내민 꽃봉오리를 단숨에 먹어치운다. 에누리 없는 끔찍한 자연의 섭리. 아침 이슬도 매미도 개미도 두꺼비도 메추라기도 메뚜기도 꽃봉오리도 시즈카도 다 각자의 방식으로 오늘 여기에 있다’. 생명을 다하기 직전까지 본능에 충실하며 산다.

 

내가 언제까지 이곳에서 살지는 모르겠지만 사는 동안은 흙에서 사는 존재들을 흠뻑 즐길란다. 나에게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명을 옹호하는 글이 줄줄 새어나오길 기대한다. 그런 의미에서 황진희 작가 책 <우리는 서로의 그림책입니다>에서 인용한 다시마 세이조 에세이 <내 인생의 진국> 중 한 구절을 마음에 새긴다. “감촉은 달라도 다른 생물들에게도 생명의 울림이 있다. 날아가는 새에게도, 밭에 있는 채소에도, 물론 우리 인간에게도. 이 생명의 울림을 그리기 위해 나는 그림책 작가를 계속하는지도 모른다. 그 생명의 파닥거림을 그리려고 붓을 드는 것만으로 그림이 되지는 않는다. 내 몸속에 스며든 것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새어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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