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어간다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어간다
2017년 7월 7일 토요일 자정
출산은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임신 기간내내 아름다운 출산에 대한 이미지를 계속 그려와서 현실로 다가온 난도질 수준의 대학 병원 분만이 더 끔직했다. 그래도 날 보고 예쁘게 웃어 주는 아가를 보며 몸을 아니 마음을 추스렸다. 하느님께서 우리 부부에게 보내 주신 아기(사람)를 잘 보살피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런 환경에서 나오지 못하게 한 미안한 마음 때문에 조리원에서 계속 안고 재우고 이야기 들려주고 극성맞은 맘충이였다. 조리원에서 나와서 아가와 교감하며 행복한 시절을 보낼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아기를 낳으면 꼭 행복할거라고 착각했다.
육아는 현실이었고, 그현실은 감옥(공간)이었다. 감옥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병역거부자 친구들 면회(몇 번 가보지 못했지만)를 가서 듣게 된 교도소 안 상황이 내집 내방의 것과 다르지 않았기에 '감옥'이라는 은유가 과하지 않다. 아기가 계속 누워있고, 뒤집을 때까지는 혼자서 집 밖을 나갈 수 없었다. 7평 남짓 공간에서 하루종일 아기 보고, 빨래하고, 밥하고, 밥 먹고, 설거지하고, 바닥 닦는 것들을 하면 하루가 빼곡히 채워진다. 남편도 일하고 돌아와서 할 일이 많다. 애 목욕시키고, 밥 먹고, 설거지하고, 마른 옷가지 정리하기 등등. 가끔 책을 본다던가 영화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시간표는 내가 계획할 수 없고 아기의 울음 소리에 따라 정해진다. 밤에 푹 자는 일은 사치다. 기지도 걷지도 못하는 아가는 내게 너무나도 혹독한 교도관인 셈이다.
정신을 차린 건 100일이 지나고 아기가 밤낮을 구분하고 나서다. 그때 성경을 함께 읽고 생활 나눔을 하는 모임을 시작했다. 해당 성경을 읽고 케빈 페로타가 던지는 질문에 답을 하면서 각자 신앙 생활의 답을 찾아가는 모임이다. 6~7명이 각자의 대답을 공유하고, 이에 댓글 형식으로 대화를 주고 받으며 말씀이 주는 주제어를 되새기는 방식이다. 나는 일상(혹은 정리되지 않은 내 생각)을 사람들과 공유했고,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환대). 이 모임을 하면서 크게 위로 받았던 말이 있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지만, 우리는 사랑 받는 것만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을 어려워 한다"라는 신부님의 말이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사랑해야 하는 대상은 어려운 이웃이다. 난 상황이 여의치 않았으니 내게 온 어린 이웃(아가)을 먼저 사랑해 보기로 했다.
8개월째 조리원 동기모임을 갔다오자마자 아기가 심하게 감기에 걸렸다. 밤새 토하고 아저씨처럼 크게 기침을 하고 콧물 주루룩 흐르고. 진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어린 아기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닌 내 잘못인거 같아 속상했다. 그럴수록 마음을 가다듬고 아가를 하루종일 끌어안고 '엄마손이 약손' 놀이를 하면서 좋은 기운을 주려고 애썼다. 그때 댓글이 생각났다. '아! 내가 평소에 아기에게 했던 행위에 사랑하려는 마음이 함께 있었는가! 아프니깐 이제와서 자발적 희생, 곧 예수가 말한 사랑의 행위를 시작하는건 아닌가.'
삼십년을 넘게 살면서 '사랑'이란 단어을 단단히 오해해왔다. 온갖 판타지를 원하며 멜로 드라마를 즐겨 봤고, 구름에 둥실둥실 손에 잡히지 않는 '사랑' 비스무리한 감정에 매달려왔다. 심지어 연애소설가가 되고 싶어했다. 정말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 엉터리 연애소설은 부끄러운 흑역사가 되었을 게 분명하다. 사랑, 그것은 분명 숭고하고 아름답다. 그리고('그러나'가 아닌 이유는 사랑 안에 두 가지 형용사가 함께 공존하기 때문이다) 아프고 치열하다. 스스로의 삶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인 내게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가 왔다. 그 사실을 깨닫고서 난 비로소 스스로 만든 지긋지긋한 감옥에서 벗어났다. 아가의 생애 첫 감기로 사랑받는 것(환대)과 사랑하는 것(환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by 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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