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화분을 키워 주세요
판타지와 현실
화분을 키워 주세요는 무려 1959년에 출간된 그림책이다. 와. 그때면 한국은 지긋지긋한 가난에 허덕이던 보릿고개 시절이 아닌가. 그때 지구 저편에서는 집에서 화분을 키웠구나. 토미가 이웃의 화분을 키워 용돈을 버는 행동은 기특하다.
화분으로 가득한 집은 아침을 먹을 땐 소풍 온 것 같고, 티비를 볼 땐 야외극장에 온 것 같다. 목욕을 할 땐 호숫가에 있는 느낌이 든다. 이정도면 판타지지. 판타지가 매력적인 이유는 현실을 더 선명하고 뚜렷하게 하는데 있다. 여기다 토미는 꿈까지 꾼다. 꿈은 가히 판타지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지. 갑자기 괴물이 툭 튀어 나온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판타지로 들어간다. 거대해진 화분은 집을 부시고 이웃들은 화분 내노라 소리친다. 꿈에서 겪은 일로 토미는 무척 혼란스럽고 걱정된다. 아이에게 꿈(판타지)과 현실의 구분 따윈 없기 때문이다. 정말 화분이 집을 부실만큼 커다랗게 자라서 엉망이 될 것만 같다. 그래서 결국 이웃들이 화분 내노라고 고래고래 소리칠 것만 같다. 현실세계에서 정글이 되어가는 집 때문에 엄마 아빠에게서 핀잔을 들은 게 아마도 꿈으로 이어진 듯하다. 핀잔을 받아도 꿋꿋하게 자신이 하는 일은 근사하다고 믿어왔던 토미의 내면이 꿈속에서 무시무시한 재난 이미지로 그려진 게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바라던 아기를 낳았다. 아기에게 밤낮으로 젖을 주느라 그때그때 쪽잠만 잤다. 그 덕분에 꿈을 꾸지 않았다. 몸은 피곤하지만 행복했다. 안정적인 남편에 토끼같이 귀여운 내 새끼까지. 두돌이 지나고 아기가 통잠을 자게 되면서 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지금 삶이 완전히 행복하지 않다는 걸 일깨워주는 잔인한 시간. 꿈이 너무 힘들어서 현실의 나는 점점 심약해지고 수척해졌다. 호랑이(가족)가 나타나 날 겁주고 무섭게 했다. 지금은 아파서 아무것도 못하는 호랑이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는 현실. 나는 꿈에서 깨어나 무기력하게 가만히 있었다.
꿈과 희망을 주는 그림책 주인공 토미는 끔찍한 꿈에서 현실로 돌아왔을 때 나처럼 무기력하지 않았다. 깨어나자마자 뛰쳐나가 꿈 속 현실을 해결하러 간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뒤지고 결국 해결책을 찾아낸다. 화초가 더 무성해지기 전에 자르고 다듬었다. 잔가지는 야무지게 작은 화분에 옮겨 심어 동네 아이들에게 선물까지 한다. 나는 그의 두려움 극복기를 굉장히 흥미롭게 봤다.
내 꿈은 토미의 것만큼 끔찍하다. 그리고 아직 꿈을 해결하지 못했다. 다만 꿈을 꾸지 않는 방법에 대해 공부했다. 낮잠 안 자고 삼시세끼 부지런히 챙겨 먹고 운동하면 꿈 안 꾸고 푹 잔다. 이젠 꿈을 잘 안 꾸고 건강도 되찾았다. 문제는 꿈에서 겪은 일은 현실에서 더 이상 진전이 없다는 것이다. 이빨 다 빠진 호랑이에게 가서 ‘그때 날 무섭게 했던 거에 대해 사과해’라고 말하고 사과를 받아내면 해결이 될까. 화분을 키워 주세요 덕분에 토미처럼 좀 더 적극적으로 내 꿈을 현실로 꺼내어 바라보고 어떻게 해서든 극복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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