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난 곰인채로 있고 싶은데
있는 그대로의 나
“난 곰인채로 있고 싶은데 …”를 읽고
겨울잠 자는 곰을 안전하게 감싸던 숲은 공장이 되었다. 공장에서는 곰을 곰으로 봐주는 이가 하나도 없다. 본래 ‘곰’인 자를 ‘곰’이 아니라고 우겨대니 곰은 이겨낼 재간이 없다. 자기를 증명해 보라는 사장을 따라 곰들이 있는 곳을 간다. 동물원 곰은 야생의 곰이 낯설다. 오랜 시간 철장 안에 갇혀 산 곰들은 철장 밖에 서 있는 곰을 부정한다. 밖을 활보한 경험이 없으니 당연히 같은 곰이라는 생각을 못하는 거지. 곰은 잔뜩 화가 나서 소리친다. “저는 곰입니다! 분명히 곰이라고요!”(16쪽) 서커스단 곰들을 만나 똑같은 경험을 한다. 답답할 노릇이다. 그래도 곰은 어느 순간에도 자기가 곰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그러던 곰이 순순히 공장의 일꾼이 된다. 이내 체제에 순응한다. 얼굴이 화끈해질 정도로 숨이 가빠올 정도로 화가 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곰은 혼자이고 혼자인자의 저항은 한낱 메아리일 뿐.
나는 과연 ‘있는 그대로 나’로 존재하는가. 자본주의가 세상을 오염시킨다고 경멸하면서 플라스틱과 비닐 포장을 잔뜩 해놓은 식재료를 산다. 가끔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다. 1년을 신어 지저분해진 신발이 부끄러워 새 신발을 사 신는다. 곰처럼 당당하게 진짜 ‘나’라고 말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한다면 자기를 속이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하며 스스로 만든 무수한 틀에 나를 가두고 이내 죄책감에 빠진다. 이런 나를 마주하는 순간이 미치도록 괴롭다. 나야말로 모순덩어리 그 자체다. 체제에 순응한 곰보다도 못하다. 자연에 가까운 내가 아니 그보다 내 맘에 쏙 드는 ‘나’가 가능이나 한 걸까.
이십대에는 돈이 없어도 당당했다. 남편은 최저시급 받으며 햇빛발전소협동조합에 헌신했고, 나도 임신 전까지 교회에 헌신했다. ‘헌신’은 ‘자발적 가난’의 다른 이름이다. 그땐 정말 밑도 끝도 없이 가난에 당당한 청춘이었다. 그러다 남편은 곰처럼 체제에 순응이라도 하듯 당진에 와 밤낮으로 일한다. 꽤 자주 햄버거와 피자를 꾸역꾸역 몸속에 채워 넣는다. 그래도 헛헛함은 가시질 않는다. 내가 사랑하던 빼빼마른 청년 운동가는 본래 자기가 누구인지 새까맣게 잊고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배 나온 일반 직장인이 되었다. 도시텃밭으로 먹거리를 얻고 재봉을 배워 옷을 직접 만들어 입으면서 자급자족을 꿈꾸던 나는 매일 마트에 간다.
곰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면도를 하고 작업복을 입고 공장 인부로 일한다. 뭘 만드는 공장인지 모르겠지만 규모로 봐서 당진에 화력발전소급으로 보인다. 주어진 일을 하긴 하나 뭔가 이상하다. 은방울꽃을 보며 봄을 직감하고 낮이 긴 여름엔 잠을 이루지 못한다. 단풍잎 바람에 부딪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가을이 되니 점점 졸려온다. 몸은 거짓말 못한다. 겨울잠을 자야 하는 곰은 본능에 충실하다. 졸고 또 존다. 본능에 충실한 자는 공장에 필요 없는 법. 바로 해고다. 곰은 기다렸다는 듯 짐 싸서 얼른 공장을 빠져나간다. 걷고 또 걸으면서 자기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야할지 생각했을까. 그렇게 도착한 모텔에서 드디어 삶의 은인을 만난다. 손사래 치며 곰에게는 방을 내어 줄 수 없다는 모텔 직원 말이다. 뜻밖에 상대에게서 진짜 자기를 확인한다. ‘아, 나 곰이었지.’
뭘 자꾸 하라고 강요당한 곳에서 자유로워졌지만 갑자기 생긴 자유가 어색하다. 아직 완전한 곰이 되기 전이다. 우선 숲에 들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한다. 아무래도 무언가 중요한 건 바로 ‘곰인채로 있는 것’이라는 걸 깨달은 걸까. 아니면 깨달음 이전에 이미 생각 안 해도 되는 자연 그대로의 곰이 된 걸까. 결국 인간들이 입혀 놓은 옷가지 신발을 다 벗어 던지고 겨울잠 자러 엄마 품처럼 따뜻한 굴로 들어간다. 어느 때 보다 지친 곰은 간만에 두 다리 뻗고 잤을 것이다.
가끔 나만 깨어있는 밤이 되면 ‘모순투성이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애타게 찾는다. 먹고 싸고 먹고 싸기를 반복한 하루가 그냥 지나가버릴 찰나에 정신을 차린다. 현실은 그야말로 똥이다. 전국의 산업 쓰레기를 파묻는 다는 곳이 근처에 생긴다. 친구가 전화를 해 와서 재작년에 분양받은 서울 아파트가 3억이 올랐단다. 집이 없어 바람불면 휘리리릭 날아가 버릴 신문지 한 장으로 밤을 버티는 사람들은 한 끼 먹을 돈이 없는데. 부자는 가난을 자신과 무관하다 착각한다. 그래서 가난은 언제나 난제다. 아이러니하게도 가난을 떠올리며 희망을 발견한다.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작은 존재들에서 말이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천변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와 물 속 생명체들. 부모 없이 증조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순박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전쟁 때 팔 한쪽을 잃은 할아버지는 거리에 핀 들꽃을 보려고 잠시 허리를 구부린다. 우리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자연성? 순수성? 그런 게 보인다.
세상이 얼마나 발전할지 모르겠지만 어떤 체제든 한계가 있다. 본래부터 갖고 있던 작은 존재의 순수성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어느 날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우리 모두는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누구든 무엇이든 진짜가 되어야 한다. 진짜 ‘곰’이 되는 것은 정직해 지는 거다. 자연에 순응하여 겨울잠 자러 가는 것이다. 너무 간단하지 않은가. 진짜가 되려면 자연에 순응하는 거라니. 그러려면 온갖 광고와 공장이 난무한 지상의 현실에선 엄청난 저항이 필요하다. 순리를 거스르는 부유함을 택하지 않고 살아야 한다. 가난하고 쓸쓸하고 외롭고 아픈 존재와 손을 잡아야 한다. 대부분 알지만 쉬이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지 않은가. 아마도 길고 긴 눈길을 걷는 것처럼 외롭고 힘들게 뻔하다. 그래도 가봐야 하지 않은가. 우리가 스스로 숲을 찾아 걸어 들어가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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