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중국 조선족 설화, 재미네골
“모두 마을에 필요한 분들이예요”
<재미네골>을 읽고
로자
면단위 시골에서 사람들을 만나 전성기 때 이야기를 들었다. 옛 이야기를 듣는 것 마냥 인터뷰 시간이 황홀하리만큼 좋았다. 적성 제대로 찾았다. 많은 질문을 준비했다. 그 가운데 마지막 질문은 '지금은 없어서 아쉬운 것은 무엇인가'다. 농촌엔 너무나 많은 것이 없어졌다. <재미네골>에 나오는 목수, 대장장이, 토기장이는 이제 없다. 침 잘 놓는 의원도 아낌없이 물을 내어 준 샘도 함께 장례를 치르느라 필요했던 상여집도 북적북적했던 시장(오일장)도 없어졌다. 그중에서 누구 생일이고 혼례고 장례니 하는 큰 잔치를 치를 때 이웃 간 자기 일처럼 사흘 밤낮을 도왔고 함께 즐겼던 게 제일 기억난다 했다. 그날을 회상하며 아쉬워하는 이장님 표정이 눈에 선하다. 이제 이웃사촌은 옛말이 되었다. 마을은 더 이상 마을의 구실을 하지 못한다. 필요한 게 있으면 큰 시내로 나와서 해결해야 한다. 시장도 잔치도 이젠 마을 안에 없다. 배고픈 시절은 지났다. 하지만 ’정‘고픈 시절이 도래했다.
나는 ‘고향이 어디야?’라는 질문이 제일 싫었다. 대학에 가니 다들 지방에서 온 아이들이 자기들 고향은 부산, 제주, 광주, 전주라고 확실히 말하는 게 부러웠다. 난 ‘서울 흑석동이야’라며 바로 말을 하지 못했다. 서울은 왠지 고향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아서. 이때부터 마을에 관심을 가졌다. 휴학을 하고 러시아 고려인 마을에 갔다. 조국을 잃고 외딴 곳에서 터를 꾸려 나갔던 민족을 만나고 왔다. 특정 마을에서 몰려 사는 것은 집단 이주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이들의 생존 전략이다.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 코로나 시대와는 정말 안 어울리는 옛말이다. 한 마을에 터전을 잡고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고이 가져온 씨앗을 함께 온 사람들과 나눴다. 쌀의 민족은 척박하고 낯선 땅을 일구어 죽지 않고 살았다. 이들이 고려인, 조선족들이다. <재미네골>이라는 설화를 만든 이유도 심히 짐작이 간다. 설화는 마을에서 모두가 서로를 중요한 사람이라고 여기며 오순도순 잘 살라고 들려준 조상의 혜안이다.
러시아 연해주 땅 북부에 노보루사노프카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먹고 잤다. 가끔 마을 분들에게 한국어 알려주는 일도 했다. 마을에는 고려인, 슬라브족, 러시아인이 섞여 산다. 그중에서도 고려인은 제일 부지런하고 부자다. 자식도 많이 낳는다. 러시아인은 고려인의 일꾼으로 먹고 산다. 고려인은 마을에서 네트워크가 대단하다. 거의 모두가 친인척, 가족이라는 특이한 점도 있었지만 제일 마을스럽다고 느꼈던 이유는 따로 있다. 따냐 아줌마네서 닭을 키워 달걀이 나오면 로냐 아줌마네 우유와 서로 교환해서 먹는다. 농사 일에 일손이 부족하면 마을 사람들 다 몰려가서 돕는다. 누구누구 생일이 되면 잔치를 한다. 난 일주일에 한 번꼴로 잔치 음식을 대접받았다. 목수 일 하는 발로샤 아저씨는 마을 집집을 다니면서 수리 보수를 한다. 누구라도 아프면 안톤 아저씨가 가서 침을 놔주고 한약을 지어준다. 정말이지 무슨 사극에 나오는 조선 마을 같았다. 나의 유년기엔 이런 마을의 경험이 없다. 그래서 ‘고향이 서울이야’라고 선뜻 말하지 못했나 싶다.
지금 시골엔 사람이 너무 없다. 절대적 숫자보다 비율이 문제다. 마을은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꽉 차있다. 아기의 울음소리도 아이들이 깔깔 거리며 노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용왕님도 아시는지 영 좋은 날씨를 주지 않으신다. 농부는 더 이상 하늘과 바람의 뜻에 따라 땅을 가꾸지 않는다. 코로나 이후로 다르게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들 하지만 아직 감을 못 잡고 있는건가 내 보기엔 코로나 이전과 똑같다. 우린 <재미네골> 사람들을 교훈삼아 자연 귀한 줄 사람 귀한 줄 알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by ro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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